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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수 칼럼] #155 - 정조대왕에게 지혜를 구하다

사도세자의 아들로 유명한 정조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를 통틀어 우리나라 국민이 두 번째로 좋아하는 왕이다. 그의 인기를 반영하듯 정조의 이야기는 조선왕조 스토리의 단골메뉴인 동시에 세종대왕, 이순신과 함께 아무리 들어도 지겹지 않은 3대 역사서사시 중의 하나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런 정조의 이야기를 다룰 때면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하나 있으니, 바로 정조의 비서실장 홍국영(1748~1781)이라는 사람이다. 

홍국영은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노론세력으로부터 어린 정조를 보호한 탓에 정조가 왕이 되기 전부터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지내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당시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 대부분에서는 그의 이름이 빈번히 등장하고, 정조를 보필하여 개혁을 추진한 인물로, 뛰어난 지략가로, 정치판을 새롭게 짠 인물로 꽤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그러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던 홍국영도 결국 권세 7년 만에 정조의 명에 의해 도성에서 추방되고 결국 유배지에서 자신의 삶을 마감하게 되는데, 당시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정적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준 홍국영에 대한 고마움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었지만, 조정대신을 함부로 대하고 종묘사직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등의 전횡이 끊이지 않자 결국 홍국영의 유배를 결정했다"라고 적혀있다. 

자신의 은인이자 오랜 친구인 홍국영을 유배 보낸 정조의 결정에 대해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라고 생각한다면, 큰 어려움 없이 세상을 살아온 사람이다. 크고 작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험난한 파고를 극복하며 지금의 자리까지 온 사람이라면 인간관계에 대한 딜레마가 생길 때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감싸주었으면 감쌌지, 자신의 속내를 함께 한 사람을 내리 친다는 것이 생각만큼 그리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수개월 전, 경기도 성남에서 의료장비를 만드는 회사(A기업)에서 있었던 일이다. A기업의 사장은 10년 전, 후배 5명을 모아서 피부치료에 도움이 되는 의료장비를 개발하였다. 외국장비가 국내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시절에 개발한 A기업의 국산장비는 우리국민의 애국심과 가격경쟁력에 힘입어 무서운 판매고를 달성하게 된다. 

마침 불어 닥친 홈쇼핑 열풍은 A기업에게는 뜨거운 호재로 작용하여 A기업의 제품은 물건이 없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초창기부터 회사에서 청춘을 보냈다는 어느 직원은 그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무조건 현찰을 가져와야지 물건을 주었어요. 정말로 거짓말 하나 안하고 사과박스에 현찰을 가지고 온 것을 보고 주문 발주를 했다니까요!” 덕분에 A기업은 10년 만에 증시에 상장까지 하는 등 전성기가 영원한 듯 보였다. 

영원할 것 같았던 A기업의 성장에 브레이크가 걸린 것도 이 시점이었다. 성장이 가파르게 이루어지면서 유능한 인재들이 대거 영입되었던 것이다. 조직이 커지면서 그에 어울리는 경험과 경륜을 갖춘 인사들이 대거 회사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 새로 영입된 사람들과 초창기멤버들 사이에 크고 작은 마찰이 발생했다. 나중에 들어 온 사람들 눈에는 초창기 멤버들의 행동이나 지적 수준이 생각보다 크게 모자란다고 여기고 있었고, 기존 멤버들의 눈에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내려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회사가 사옥을 마련하면서 다른 도시로 이전을 하게 되었는데, 사장하고 친한 기존 멤버들 중의 일부가 회사 주변에 집을 얻고 싶으니 전세자금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부서장들은 당연 사규에도 없을뿐더러 다른 직원들하고의 형평성 문제도 있고 하여 비용문제는 각자 알아서 하라는 취지의 멘트와 함께 상식에 어긋나는 행위는 하지 말라고 면박을 준 모양이다. 

그러자 초창기 멤버들 사이에 강한 반발이 일어났다. “사장님과 동거동락을 함께 하며 회사를 키워온 창업공신을 감히 굴러온 돌들이 함부로 대한다.”고 하면서 이 문제를 가지고 사장에게 달려간 것이다. 자신과 함께 해 온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은 사장은 그 자리에서 5명의 후배들에게 각각 1억 원씩의 전세자금을 지원해 주라는 명령서를 만들어서 재무담당 부사장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후배들의 의견을 묵살한 해당 부서장들을 전원 해고해 버렸다. 

비슷한 이야기가 여기 또 하나 있다. 주인공은 틀리지만 인접한 동네에 위치한 B기업의 경우도 사장의 측근으로 인해 큰 홍역을 치른 케이스이다. 이곳은 사장의 조카가 문제였다. 종업원 수가 300명이 넘는 중견기업으로 회사를 성장시킨 김인수 사장(가명)에게는 잊을 수 없는 마음의 빚이 하나 있었다. 가난한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돌봐 준 누이가 하나 있었는데, 그 누이가 세상을 떠나면서 말썽쟁이 아들을 부탁하고 떠난 것이다. 

가난한 시골집안에서 누이의 보살핌을 받으며 어렵게 자란 김사장에게 있어서 누이의 부탁은 거스를 수 없는 하늘의 명령과도 같았다. 김사장은 누이의 장례를 치르는 즉시 누이의 아들을 회사에 출근토록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학력과 껄렁한 성격 때문에 회사 내의 그 누구도 김사장의 조카를 자신의 부서로 받아들이기를 꺼려했다. 그러자 김사장은 자신이 직접 나서 누이의 아들을 개인비서로 쓰기 시작했다. 

어떤 때는 운전기사가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비서 역할을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김사장의 집안 심부름도 하는 등, 불량학생으로 학교를 다녔던 누이의 아들은 조금씩 김사장의 그림자가 되어갔다. 사장이 어디에 있던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그의 존재에 대해서 회사 내에서 이런 저런 말이 돌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장 조카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가급적 그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은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만 아니라,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가식적인 행동도 하기 시작했다. 

그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의 입을 통하여 어떤 지역에 어떤 비즈니스가 전개가 될 것이며, 어느 자리에 누가 발령이 날 것이다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사람들이 그러한 소문이 하나 둘씩 현실화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사장 조카가 가지고 있는 정보력과 영향력에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급기야 임원들조차도 그에게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사장에게 잘 말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선물을 건네는 이들도 생겨났다. 

한창 잘 나가던 사장 조카의 무소불위의 권력은 결국 술자리에서 같은 회사의 직장상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터짐으로써 일단락 지어지게 되는데,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하게 된다. 못된 조카의 행실을 나중에 알게 된 사장이 사태를 수습해 보려 노력해 보지만, 이미 회사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직원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직원들이 하나 둘씩 보따리를 싸고 조직을 떠나는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아래의 그래프는 얼마 전(2016년 9/26~10/7) 직장인 5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의 결과이다. ‘선발과 육성’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지식포럼을 개최하기에 앞서, 현상파악을 위한 자료로 쓰기 위해서 조사한 것이었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결과가 나와서 적잖이 놀란 마음으로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나”하고 한 참을 고민하게 만든 그래프이다. 



직장인들은 '경영진과의 친밀도'가 잠재능력, 동료평가와 함께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승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승진대상자를 선정함에 있어 경영진의 입김이 전혀 작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직장인들의 눈에는 경영진과의 친밀도가 다른 요소들보다도 훨씬 더 효과도 있고 비중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평가결과가 비슷한 선상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기왕이면~' 이라는 조건하에 경영진과 친한 사람들이 승진하는 경우는 종종 있으나 동료평가, 잠재능력평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조직의 경영자라면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공정한 인사를 원하지, 자기의 입맛을 위해 조직을 망치는 길을 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조용히 눈을 감고 정조가 왜 역사 속의 위대한 왕으로 남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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