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한가위 잔치는 끝났다. 다시 돌아온 삶의 현장에는 한숨소리다. 추석민심과 화두는 단연 민생이었다. 하지만 정치판은 대권놀음에 빠져있다. 대선에 나서겠다는 후보들(?)은 즐비해도 구체적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언론매체는 그들이 던지는 토막말과 동정에 초점을 맞춘다. 어쨌든 지나치게 가볍고 때로는 허황하다.
대통령선거는 후보들이 나라가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국민의 선택을 받는 과정이다. 현실은 어떤가. 지역 연합 또는 결합으로 대선을 치른다거나, ‘제3지대론’·정권교체·단일화 등등의 말만 무성하다. 국가를 이끌어갈 방향과 정책에는 말이 없다. 지역감정 부추겨 표를 모으고 복지보따리 풀고 상대 흠집 내는 그런 선거가 또다시 반복될 가능성도 보인다.
대통령이 되면 전임 대통령의 흔적 지우기에 나선다. 다른 한 편에서는 대통령 흔들기를 시작한다. 대통령은 임기 말이 가까워지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다음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하는 분위기에 빠지면 현직 대통령은 힘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통령 임기는 5년이 아닌 길어야 3년 반이라는 말이 나온다. 5년마다 열리는 대선경주는 이어 달리기가 아니라 앞서 달린 자와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게임이 돼있다.
지진은 예측하거나 막기 어려운 자연현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나라 흔드는 일을 한다. 몸싸움하던 ‘동물국회’에서 ‘식물국회’를 지나 이제는 야당이 힘자랑하고 여당은 몸으로 저항하는 ‘괴물국회’가 돼있다. 국회선진화법이 있는 한 과반의석을 가져도, 다수당이 돼도 별 의미가 없다. 박근혜정부는 국회선진화법에 발목이 잡혔지만 다음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임기 절반을 제대로 일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국회에 기대할 게 없다는 것이다. 정당은 선거를 치르기 위한 애매한 동맹이나 다름없고 정치판은 대권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드배치 문제 하나 제대로 못 풀고 몇 달을 허비하는 대한민국은 과연 제대로 된 나라인가. 사드배치 후보지를 공개한 것도 문제였지만 후보지를 찾으러 이 동네 저 동네로 전세방 얻으러 다니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다. 검찰과 판사가 금품 받고 엉뚱한 짓을 한다.
총체적 난국은 또 이어진다. 퇴출돼도 부족한 대우조선 등 노조가 파업을 찬성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하지 않은 국민이 있었을까. 연봉제니 성과급이니 하는 문제를 놓고 파업하며 배부른 흥정을 보는 청년실업자는 어떤 심정일까. 젊은이들은 일할 기회조차 없어 방황한다. 저출산·고령화에 경제 엔진은 꺼져있어 풀어야 할 과제는 켜켜이 쌓여 있다. 조선·해운 회사의 오늘의 모습은 구조조정을 미룬 결과다.
우선 정부의 무능이 문제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노동4법 등 경제활성화법이 통과됐으면 경제가 얼마나 좋아졌을까. 물론 알 수 없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법통과를 막은 책임에서 자유스럽지 않고 정부의 경제 실정(失政)을 탓할 자격이 없다.
지금은 경제 살리기 위해 임금동결 등 할 수 있는 방안을 동원해 분위기를 바꿀 때다. 비상상황에는 비상대책이 나와야한다. 임금동결은 청년들 일자리 늘리는데 큰 보탬이 될 것이다. 취업자와는 달리 실업자에게는 임금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일자리 얻는 게 급하다. 어느 것이 더 급하고 중요한가. 공무원연금도 동결돼있지 않은가. 지금의 경제난은 경기 탓만은 아니다. 경제 살려 성장률 1% 포인트 더 높이는 게 중요하다. 2015년 국내총생산(GDP)은 1500조원, 성장률을 1%포인트 높이면 분배 가능한 부가가치는 15조원 증가한다.
대권을 향해 뛰려면 지역정서를 부추기고 어설픈 포퓰리즘을 남발할 생각을 접어라. 안보와 경제를 튼튼히 하고 장기 전략을 갖고 국민을 설득하는 용기를 보여라. 나라 흔들리는 걸 막을 수 있는 지도자라면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할 까닭이 없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선거에만 매몰돼있는 나라는 제대로 된 나라일 수 없지 않은가.